2025년 4월 19일 토요일

부활을 믿고 복음을 전파하라(막16:9-16)

 

부활을 믿고 복음을 전파하라


                                      부활하신 예수님

본문: 마가복음 16장 9절–16절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부활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구원의 선언이며, 우리 믿음의 뿌리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며, 복음은 공허한 메시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셨고, 그 사실은 복음을 전할 명백한 이유가 됩니다.

오늘 우리는 마가복음 16장 9절부터 16절 말씀을 통해, 부활을 믿지 못했던 제자들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맡기신 예수님의 은혜를 묵상하게 됩니다.


1. 믿음 없는 제자들

예수님께서 안식 후 첫날,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 나타나셨을 때, 그녀는 제자들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전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도 나타나셨지만, 이들의 증언도 믿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가까이서 들었던 제자들조차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 없음과 마음의 완악함을 책망하셨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마다 부활하신 주님을 예배하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들으며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문제 앞에서 주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현실에 휘둘릴 때가 많습니다.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연약함을 책망하시면서도,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2.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

예수님은 제자들의 연약함을 보시면서도,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명령하셨습니다. 부활을 믿지 못했던 제자들에게 세상을 향한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진 명령입니다. 복음은 단지 교회 안에서만 전해져야 할 소식이 아닙니다. 복음은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야 할 생명의 소식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이 구절은 복음 전파의 중요성과 긴박함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자는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3. 부활을 믿는 자의 삶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그 부활을 믿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복음을 삶으로 전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증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목격한 후, 더 이상 숨어 있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갇히고, 핍박을 받으며, 심지어는 목숨을 내놓으면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 가정에서,

  • 직장에서,

  • 학교에서,

  • 우리의 일상 속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삶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그 믿음은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말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복음을 말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섬기고, 진실로 살아가며, 용서와 화해를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결론: 다시 부활의 증인으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때때로 믿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제자들처럼 두려움과 의심 속에 머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부르시고, 다시 사명을 맡기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도 살아 있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부활의 증인입니다.

이제 다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부활을 믿고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시작합시다.




#예수님의 부활
#제자들의 불신#복음 전파#믿음과 구원#그리스도인의 사명#복음의 능력#삶으로 전하는 복음

2025년 4월 17일 목요일

신앙이 흔들릴 때 다시 붙드는 말씀



신앙이 흔들릴 때 다시 붙드는 말씀

– 무너지는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하나님의 음성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신앙이 흔들리는 때를 겪습니다.
기도가 막히고, 말씀이 잘 들어오지 않으며, 예배조차 형식처럼 느껴지는 시기.
마치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고, 마음 한편엔 신앙을 계속 지켜야 하는 이유조차 흐릿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순간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을 진지하게 붙들고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과정입니다.
오늘은 신앙이 흔들리는 그 시점에서, 다시 하나님을 붙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흔들리는 나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질 수 있겠는가?"
이는 욥기에서 욥이 하나님께 토로하듯 말했던 고백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하나님을 멀리 떠난 것 같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예레미야 31:3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였으므로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 약속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내가 흔들릴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붙들 말씀은 ‘내가 너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2. 무너진 마음 위에 다시 세워지는 믿음

신앙이 무너질 때는 대개 삶의 현실이 믿음을 압도할 때입니다.
고난, 상실, 지침, 반복되는 실패.
이럴 때 우리는 “정말 하나님이 계시긴 할까?” “나를 왜 도와주시지 않지?”라는 질문에 사로잡힙니다.

그때 기억해야 할 말씀:
이사야 43:2
"네가 물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불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타지 아니하리니,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이 말씀은 고난이 없다는 약속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문제를 즉시 없애주지는 않지만, 그 문제를 통과할 수 있도록 우리를 붙드십니다.
우리가 다시 신앙을 회복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3. 작아진 믿음도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십니다

신앙이 흔들릴 때는 “내 믿음이 너무 작다”며 자책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7:20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옮기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크기보다, 방향을 보십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면, 아무리 작아도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그러니 신앙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주님, 저는 여전히 주를 믿고 싶습니다.”라는 작은 고백조차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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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흔들리는 지금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모든 신앙인은 의심과 흔들림을 통해 성장합니다.
베드로도, 다윗도, 심지어 요한도 그랬습니다.
중요한 것은 흔들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다시 붙드는 선택입니다.

시편 73: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반석이십니다.
신앙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흔들릴 때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이 바로 다시 말씀을 붙잡고 일어설 수 있는 자리입니다.



마무리하며: 다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혹시 요즘 기도가 식고, 말씀도 멀게 느껴지십니까?
예배가 기쁨이 아닌 의무처럼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흔들리는 당신을 더 가까이 부르고 계십니다.”
믿음은 내가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은혜입니다.
흔들릴수록 더 붙드십시오. 말씀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당신을 다시 살릴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면,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자리입니다.
오늘도 당신을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붙드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서 13:5)


믿음은어떻게 자라는가? 일상속 영적성장법(믿음의 본질)

믿음은어떻게자라나는가?  
       - 일상 속 영적 성장법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조차 “믿음이 자라난다”는 말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을 단지 ‘마음으로 믿는 것’ 혹은 ‘교회에 다니는 것’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성경은 믿음을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처럼 표현하곤 합니다. 
생명이 자라나듯, 믿음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어떤 방식으로 자라고, 우리는 일상 속에서 어떻게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1.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로마서 10장 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의 시작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단지 교회 예배 시간에 듣는 설교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찬양 가사를 통해 되새기며, 심지어는 신앙 서적이나 나눔을 통해서도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다가옵니다.

매일 성경을 한 장이라도 읽는 습관, 팟캐스트나 유튜브를 통해 복음적 메시지를 듣는 시간, 말씀을 중심으로 한 묵상의 순간들이 쌓여 믿음의 뿌리를 내리게 합니다.

2.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라는 믿음

많은 사람들은 믿음의 성장을 특별한 영적 체험이나 부흥회, 기적적인 사건을 통해서만 기대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일상의 반복 속에서 훈련시키시고 성장하게 하십니다.

예를 들어, 다윗은 왕이 되기 전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외로운 광야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며, 작지만 꾸준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깊이 알아갔습니다. 요셉 역시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긴 시간을 지나면서 신뢰와 인내를 배우며 믿음을 키웠습니다.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출근길, 식사 준비, 가족 돌봄, 직장 업무, 공부 등—이 바로 믿음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인식하느냐, 그리고 믿음의 시선으로 그 일상을 대하느냐입니다.

3. 작지만 꾸준한 영적 습관이 자라게 한다

믿음은 한순간 ‘폭발적으로’ 자라기보다는, 마치 식물이 매일 자라듯 작은 습관을 통해 서서히 성장합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실천이 도움이 됩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 말씀 묵상: 말씀을 읽고 묵상한 뒤 짧게라도 느낀 점을 적어보세요. 반복이 힘이 됩니다.

짧은 기도 습관: 하루 3분이라도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사 일기 쓰기: 오늘 하루 감사한 일을 매일 3가지씩 적어보는 훈련은 믿음의 시선을 훈련시켜줍니다.

공동체 참여: 믿음은 공동체 속에서 자랍니다. 작은 교제, 나눔, 기도 모임 등을 통해 믿음이 견고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습관은 겉보기엔 단순하고 느려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깊고,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역사하십니다.

4. 믿음의 시험도 성장의 한 과정

믿음이 자라는 과정에서 가장 흔히 겪는 것이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단지 고난이나 어려움뿐 아니라, 의심, 침묵, 외로움 같은 내면의 문제를 포함하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1장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믿음은 편안할 때보다 어려울 때 더욱 단단해지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설명되지 않는 일들을 허락하시며, 그 가운데 더 깊은 신뢰를 배우게 하십니다.

우리가 감정적으로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더라도, 말씀을 붙들고 의지를 다해 믿는 훈련을 하는 순간, 믿음은 한층 더 성숙해집니다. 흔들림은 성장의 전조입니다.

5.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데서 온다

믿음은 단지 ‘잘 믿어보자’는 결심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진짜 믿음은 하나님을 ‘알게 될수록’ 생깁니다. 마치 누군가를 오랜 시간 알아가면 자연스럽게 신뢰가 생기듯,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선하심, 신실하심, 전능하심, 사랑—을 알아가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을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 말씀과 기도,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인격적으로 만날 때, 믿음은 단단히 자리를 잡게 됩니다.


마무리하며

믿음은 어느 날 갑자기 자라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말씀을 듣고, 일상 속에 하나님을 모시며, 작지만 꾸준한 습관을 실천하고,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붙드는 과정에서 조금씩 자라납니다. 그리고 그 성장의 주체는 ‘내 노력’이 아니라,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충실히 하루를 살아내는 그 삶 속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믿음을 자라나게 하십니다.
믿음은 선택이 아니라 함께 걷는 길이며, 그 길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됩니다.

2025년 4월 16일 수요일

반석 위에 세운 교회(마16:18)

 

🕊 설교 제목: 반석 위에 세운 교회

📖 본문 말씀:

마태복음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서론: 교회는 어디 위에 서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고 있지만, 중요한 질문 하나가 우리 마음에 울려야 합니다.

“이 교회는 과연 무엇 위에 세워졌는가?”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즉, 예수님은 ‘반석’이라는 튼튼한 기초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 신앙의 기초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 본론

1. 베드로의 고백 위에 세운 교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5)

그 질문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

이 고백이 바로 교회의 기초입니다.
여기서 헬라어로 ‘베드로(Petros)’는 작은 돌,
‘반석(Petra)’은 큰 바위, 거대한 기반암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라는 인물 위에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고백, 즉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는 뜻입니다.

✅ 교회는 사람 위에 세워지지 않습니다.
✅ 교회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 위에 세워질 때, 비로소 참된 교회가 됩니다.


2.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확신에 찬 약속입니다.
여기서 ‘음부’는 죽음, 사탄, 죄의 세력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교회를 공격합니다. 시험과 환난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선 교회절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 핍박이 와도,

  • 유혹이 와도,

  • 시대가 바뀌어도,

그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3. 말씀 위에 세운 인생 (마 7:24-27)

마태복음 7장에서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와 같으니…”

✅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할 때, 그 인생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처럼 든든하게 세워집니다.

우리의 믿음이 예배 시간만의 고백이 아닌, 삶 속에서 드러나는 실천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 적용과 결단: 내 신앙의 기초는 어디에?

이제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어디에 기초하고 있습니까?

  • 감정 위에?

  • 사람 위에?

  • 환경이나 상황 위에?

그렇다면 그 신앙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그 반석 위에 서 있다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 교회도, 가정도, 내 인생도
✅ 예수님 위에,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 결론: 다시 반석으로 돌아가자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우리의 대답도 베드로처럼 되어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이 매일의 고백이 되게 하십시오.
이 고백 위에,
여러분의 인생이,
여러분의 가정이,
그리고 이 교회가 세워질 때,
음부의 권세도 이기지 못할 줄로 믿습니다.


🛐 마무리 기도

“주님, 우리 모두가 반석 되신 예수님 위에 서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우리의 신앙이, 말씀이 기초가 되게 하시고
세상이 흔들어도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고난주간 설교 "바라바냐, 예수냐 – 선택의 기로에서“(마27:11-26)

 "바라바냐, 예수냐 선택의 기로에서

본문: 마태복음 27:1126

1. 도입: 매일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사람은 매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오늘 아침에도 무엇을 입을지,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인생에는 단순한 선택을 넘는 결정적인 선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러한 선택 앞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선택을 묻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너는 누구를 선택하겠느냐? 바라바냐, 예수냐?”

 

2. 본문 배경 요약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으십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께서 무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그 책임을 회피하고자 유월절 특사 관례를 이용해 군중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합니다:

살인자 바라바냐, 무죄한 예수냐? 군중은 놀랍게도 바라바를 선택하고, 예수는 십자가에 넘겨집니다.

 

3. 본론: 바라바냐 예수냐 세 가지 영적 교훈 

1) 무지한 군중심리의 위험성 (1223)

군중은 처음부터 예수를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선동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들은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순간적인 감정과 분위기에 휩쓸려 살인자를 선택합니다.

묵상 포인트: 나는 진리를 분별하며 사는가, 아니면 세상의 목소리에 휘둘리고 있는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디어, 사회 분위기,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 진리처럼 들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2) 책임 회피의 죄 (24)

빌라도는 물을 가져다 손을 씻으며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말합니다.

그는 무죄한 예수를 죽이는 결정에 가담하면서도 책임은 회피합니다. 

묵상 포인트: 나는 내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종종 빌라도처럼 옳은 줄 알면서도 불이익이 두려워 침묵하고, “나는 몰랐다”, “나는 한 일이 없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침묵도 하나의 선택입니다.

 

3) 잘못된 선택의 대가 (2526)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는 군중의 외침은 놀라울 정도로 무서운 선언입니다.

그들은 눈앞의 감정에 사로잡혀 자기 파멸을 자초합니다.

예수님은 대신 채찍질당하시고 십자가에 넘겨지십니다.

 

묵상 포인트: 나는 매일의 선택 가운데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오늘 우리의 선택이 내 삶의 열매를 결정합니다.

예수님을 버리는 선택은 사망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선택은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4. 결론: 지금, 당신은 누구를 선택하고 있는가?

 

이 본문은 단순히 유대인의 잘못을 지적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라바와 예수를 놓고 선택하는 그 순간은 오늘 우리 삶에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진리냐 거짓이냐,

생명이냐 죽음이냐,

순종이냐 불순종이냐.

 

예수님은 아무 죄 없으셨지만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바라바처럼 우리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희생으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주님을 선택하는 삶, 그 길을 따르는 삶, 그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 적용과 기도

 

나는 예수님을 선택하고 있는가, 아니면 바라바인 = 내 욕망을 선택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 군중의 소리에 휩쓸리지는 않는가?

옳은 것을 알면서도 빌라도처럼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는가?

 

기도제목:

 

주님, 매일의 선택 가운데 예수님을 선택하게 하소서.

진리를 따르고, 책임을 감당하며, 생명의 길로 걷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수 있을까?(잠3:5-6)

 

📖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본문: 잠언 3장 5–6절  하나님의 뜻 분별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1. 하나님의 뜻이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인생을 살다 보면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진로, 결혼, 직장, 인간관계…
이럴 때면 누구나 이런 질문을 하게 되죠:

“하나님, 무엇이 주님의 뜻인가요?”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복잡한 지침이 아니라, 우리 삶에 실제적인 지혜를 줍니다.


2. 하나님의 뜻은 '관계' 안에서 보입니다

잠언 3장 5–6절은 우리에게 아주 분명한 원칙을 줍니다.

  •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라
    → 하나님의 뜻은 먼저 ‘신뢰’에서 시작됩니다.
    계산보다 신뢰, 논리보다 믿음입니다.

  •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 작든 크든 ‘하나님을 인정’할 때
    하나님은 길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갈 때 점점 더 분명해집니다.


3. 하나님의 뜻은 '순종' 가운데 선명해집니다

하나님의 뜻은 가만히 앉아서 갑자기 ‘번개처럼’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순종, 일상의 결정, 진실한 기도를 통해 조금씩 드러납니다.

예:

  • 기도하다 떠오른 작은 감동을 따를 때

  • 말씀을 읽다 한 구절이 유난히 다가올 때

  • 누군가의 조언이 내 마음을 울릴 때

그 모든 순간에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열려 있다면, 그분의 뜻은 아주 실제적으로 다가옵니다.


4. 하나님의 뜻은 '평강'으로 확인됩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하나님의 뜻에는 평강이 따릅니다.
불안과 조급함은 때로 우리의 생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는 설명할 수 없는 확신과 평안이 있습니다.


5. 결론 – 하나님의 뜻은 오늘,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여정은 결국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 오늘 하루, 작은 기도부터 시작해 보세요.

  • 삶의 작은 결정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물어보세요.

  • 말씀을 읽고 마음에 드는 한 구절을 붙잡아 보세요.

그렇게 한 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게, 은혜롭게, 우리의 삶 속에 드러납니다.


🙏 기도
“주님, 제가 오늘도 주님의 뜻을 구합니다.
제 생각보다 주님의 마음을 따라가게 하시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걸어가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앙의 본질과 형식(말1:6-8)

신앙의 본질과 형식

본문: 말라기 1장 6–8절


✿ 서론: 형식은 있는데 본질이 없다

어느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을 위해 정성껏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식탁에 앉은 남편은 식사 내내 휴대폰만 바라보며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음식은 있었지만, 그 자리에 ‘사랑’은 없었습니다.

우리 신앙도 그럴 수 있습니다. 예배당에 나와 찬양하고 기도하지만, 마음은 하나님과 멀어진 상태일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나를 정말 마음으로 예배하고 있니?”


✿ I. 하나님은 관계의 하나님이십니다 (말라기 1:6)

본문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아버지’와 ‘주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단지 권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책임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백성들과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당시 백성들은 하나님을 마치 형식적으로만 대하고 있었습니다. 이름은 부르지만 마음은 멀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슬퍼하신 이유였습니다.


✿ II. 본질 없는 형식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1:7–8)

하나님의 백성들은 제사를 드리긴 했지만, 흠 있는 동물을 가져왔습니다. 당시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헌신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형식만 지키며, 마음 없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총독에게 그렇게 드릴 수 있겠느냐?"
즉, 사람에게도 드리지 않을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진정한 예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 나는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을 정말 만나고 있는가?

  • 나의 예배와 봉사는 사랑에서 비롯된 진심인가?


✿ III. 하나님은 형식이 아닌 진심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완벽한 형식이 아니라, 진심 어린 마음입니다.
시편 51편 17절에는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겸손한 마음, 회개하는 마음,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부족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 진실하게 나아갈 때 그분은 기뻐 받으십니다.


✿ 결론: 나의 신앙은 본질적인가, 형식적인가?

우리 신앙의 형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정기적인 예배, 찬양, 기도, 봉사—all of these are meaningful when they come from a heart that loves God.

이번 주에는 이렇게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 예배 전,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께 집중하기

  • 일상 속에서 짧은 시간이라도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기

  • 나의 섬김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되도록 점검하기


✿ 마무리 기도

하나님, 저희가 형식적인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주님과의 진정한 관계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늘 주님을 향하게 하시고, 드리는 예배와 삶이 기쁨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육신의생각과 영의생각

로마서 8장은 바울 사도가 **“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을 명확히 대비시키며 성도에게 주는 삶의 기준을 제시하는 중요한 장입니다. 특히 로마서 8장 5~6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